복지시설 종사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급여는 많지 않은데 일은 많고 힘들다는 주장을 자주 접하게 된다. 우스게 소리처럼 하는 이야기가 복지시설 종사자들끼리 결혼을 하고 자녀를 출산하면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나 차상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는 시설 평가에 대한 이야기다. 복지시설들은 대부분 3년에 한 번씩 평가를 받게 된다. 지원받는 곳이 많거나 여러 사업을 하게 될 경우에는 더 자주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 평가가 3년을 주기로 진행되기 때문에 한 번 평가를 받을 때 3년치 자료나 사업 등이 평가 대상기간이 된다.
이렇다보니 평가 준비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게 되고 이 평가 준비 기간동안 지쳐서 평가가 끝나면 이직하는 이들이 많고, 또 일부는 이러한 평가 주기를 고려해 가며 노인복지관, 사회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등을 유형을 바꿔가며 이직을 함으로써 평가를 피하는 이들도 있다는 식의 우스게 소리를 듣곤 한다.
그만큼 복지시설에게 평가가 갖는 중요성이 크고 평가로 인해 종사자들이 느끼는 부담 또한 크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오늘은 이러한 평가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결론 먼저 이야기하자면 적어도 장애인복지시설 평가에 있어서 만큼은 장애 당사자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이들의 활동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 한 평가지표 설명회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평가지표 설명회라는 곳에 가면 각각의 지표들에 대해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시설의 특성별로 유불리를 따져가며 문제점이나 개선사항 등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수정을 요청하고 평가지표 개발 기관들은 이 내용을 검토해 최종적으로 지표의 수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각 시설들이 처한 상황이나 수행하고 있는 사업 등이 다양하기 때문에 매우 치열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 평가지표 설명회는 어느 정도 개발된 지표를 가지고 시범평가를 진행하겠다는 계획하에 진행된 설명회였고 시범평가도 연말에 갑작스럽게 잡힌 감이 있어 그 어느때보다 격앙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각각의 지표들에 대한 질문이나 의견도 있었지만 평가지표 개발 과정과 시범평가 일정이나 대상시설 선정 등에 좀 더 비중이 실린 질의응답이 많이 이루어졌다. 나 역시 이런 저런 질문들을 많이 하였고 각각의 지표보다는 평가지표 개발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 컸기에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특히 평소 장애인복지시설 평가지표 개발에 대해 개발진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기 때문에 지표개발에 참여한 이들 중 장애 당사자의 유무에 대해 물었다. 답변은 지표개발 과정에는 장애 당사자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지난 칼럼에도 언급한 것처럼 장애인복지시설의 시설장 등으로 종사하고 있는 당사자 수가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에 어쩌면 지표개발에 장애 당사자가 참여하지 못한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복지시설 평가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장애인복지시설의 운영 상황을 점검하고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환류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지표개발에서부터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기회를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애인복지시설이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고, 이러한 시설들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입장에서 그 시설과 서비스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등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지표개발에서부터 비장애인들만이 참여하기 때문에 평가의 방향도 장애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고 평가 과정에서도 장애 당사자가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이날 소개된 평가지표안에서도 이러한 점을 몇 가지 느낄 수 있었다.
첫째, 시각장애 당사자가 참여하는 설명회 인데도 불구하고 확대자료나 점자 자료와 같은 대체 자료는 제공되지 않았다. 이 설명회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설명회에서 이런 대체자료를 제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몇몇 설명회에서는 최소한 사전에 자료집을 메일 등을 통해 파일로 제공하는 경우는 있다. 그런데 이 설명회에서는 이조차 하지 않았고 장애 당사자가 참여할 경우 별도로 자료를 신청하라거나 하는 안내조차 없었다.
아마도 장애 당사자들이 이 유형의 장애인복지시설 시설장으로 종사하는 경우가 드물고 평가지표 개발 등에도 장애 당사자가 참여하지 않았기에 정당한 편의 제공 등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둘째, 지표의 구성에 있어서도 장애 당사자의 입장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평가지표 어디에도 자기결정권 같은 용어는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인권과 같은 용어는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배점을 살펴보면 이용자 고충처리 3점, 이용자 인권침해 예방 3점, 이용자 비밀보장 3점 등인데 반해 지역사회 협력 및 자원 활용 5점, 종사자 교육 관련 문항 5점, 연차별 사업운영 계획 5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해당 시설을 이용하는 장애 당사자의 권익 보장을 위한 문항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예전에는 보호자의 동의나 보호자의 욕구반영 등의 표현을 사용해 장애인을 모두 요보호대상인 것 처럼 다루던 것에 비해 근래에는 이용자 본인 또는 보호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 정도가 그래도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평가 진행 과정에서도 당사자의 참여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10년 넘게 장애인복지시설에 종사하며 시설평가라는 것을 몇 번 경험해 볼 수 있었는데 평가위원으로 현장평가를 나오는 위원들 중 장애당사자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경미한 지체장애를 가진 평가위원이 현장평가에 참여하는 경우는 일부 있었지만 중증장애인 평가위원은 거의 본 기억이 없다. 특히, 중증 시각장애인이 평가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마도 현장평가에서 주로 서류를 중심으로 평가가 진행되기 때문에 중증시각장애인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생각하여 현장평가위원으로 선정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이 문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장애 당사자의 입장에서 평가지표를 만든다면 장애당사자가 현장에서 시설 이용자의 의견청취나 편의시설 등을 점검하는 등의 현장평가 업무는 충분히 수행 가능하다고 본다.
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한 평가에서 무조건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만을 반영하자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을 것이다. 또, 장애인 당사자가 무조건 현장평가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다소 무리일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의 사업이나 운영 상황 등을 점검함에 있어 비장애인들만 모여서 장애인에게는 이러한 것이 필요하다, 혹은 자신들이 장애인이라 가정했을 때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식의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환류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혹은 그 분야에 전문적인 경험이나 지식이 있다 여겨지는 비장애인들이 모여 서적이나 연구논문, 자신들의 경험 등을 토대로 평가지표를 선정한다면 그 결과가 장애인복지시설의 바람직한 운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장애인복지 전반에 대해 당사자의 입장이 중요시되고 있는 추세를 고려하여 장애인복지시설 평가에도 장애인 당사자들의 참여를 늘리고 그들의 역할을 강화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